2전시실

이회 정략장군 교지(李? 定略將軍 敎旨)

이회 정략장군 교지
  • 1602년 (선조 35)
  • 39.0 × 49.0

    이순신의 장남인 이회에게 오위도총부의 실무책임자인 경력(經歷)에 임명하는 교지이다.
    이회는 이순신의 막하에서 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올랐다.
    경력은 종4품 무관으로 품계의 이름은 정략장군이다..

이순신은 상주방씨와 사이에 아들로 회(?), 열(열, 첫이름은 蔚), 면(?)을 두고 딸 하나를 두었다.

딸은 인근에 살던 홍가신의 아들 홍비와 혼인하였다.

맏아들 회는 전란 중에 이순신의 막하에서 종군하여 노량해전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끝까지 싸운 인물이다.
후에 선무원종공신이 되고 임실현감을 지냈다.

둘째 열은 형조정랑을 지내고 좌승지에 증직되었다.

셋째 면은 인물이 출중하여 이순신이 매우 아끼던 아들이었는데, 명량해전 직후인 1597년 10월 아산에 침입한 일본군과 싸우다가 스물한 살의 나이로 죽었다.
『난중일기』 10월 14일자 일기에 그날의 아픈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순신은 아들의 부음을 받던 날 꿈에 말을 타고 가다가 냇물에 떨어졌는데, 면이 끌어안는 듯한 형상을 보고 깼다.
그날 저녁에 집안에서 온 편지를 받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마음이 긴장되고 조급했다.
그 편지 겉면에 둘째 열이 쓴 ‘통곡慟哭’ 두 글자를 보고 면이 전사했음을 알고는 목 놓아 통곡하였다.
그러고는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떳떳한 이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하여 이치에 어긋났단 말인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여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은들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 없으니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내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라며 슬피 울었다.
그 후로도 막내아들을 생각하며 남모르게 눈물 흘렸던 날들을 『난중일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면은 후일 정조 때 이조참의를 증직받았는데 그 묘소가 현충사 안에 있다.
이순신은 상주방씨 외에 소실을 두었는데, 이분의 『행록』에는 서자로 훈(薰)과 신(藎), 서녀 둘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훈은 무과에 올라 이괄의 난 때 전사하여 뒷날 병조참의를 증직받았으며, 신도 무과에 올라 정묘호란 때 의주에서 사촌 형 이완과 함께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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