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시실

상주방씨 정경부인 교지(尙州方氏 貞敬夫人 敎旨)

상주방씨 정경부인 교지
보물
  • 1603년 (선조 36)
  • 68.6 × 64.5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에게 우의정이 증직된 후 그 처인 상주방씨를 정경부인으로 봉하면서 내린 교지이다.
    정경부인은 경국대전의 규정에 따라 정·종 1품 문무관의 처에게 내리는 명호(名號)로 외명부 부인으로서는 최상급의 품계이다.

이순신은 스물한 살에 상주가 본관인 방진과 남양 홍씨 사이의 무남독녀와 혼인하였다.

장인인 방진은 보성군수를 지낸 무관으로, 이순신이 무관에 뜻을 두고 무예를 연마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방씨는 이순신보다 두 살 아래인 19살이었다.

상주방씨는 어려서부터 영민한 품이 어른과 같았다고 하는데, 『충무공전서』에 그 일화가 나온다.
나이가 겨우 열두 살일 때 도적이 들어와 아버지 방진이 화살로 도둑을 쏘다가 화살이 다 떨어져 방 안에 있는 화살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 집안의 종이 도둑과 내통해 화살을 모두 없애버려 집안에 남은 것이 없었는데, 이때 방씨 부인이 베 짜는 데 쓰는 대나무를 한 아름 안아다 다락에서 던져 그 소리가 마치 화살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도둑들이 놀라 도망갔다고 한다.(「상주방씨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상주방씨가 시집 온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상주방씨에게 장가를 들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은 무남독녀에게 장가를 들어 처가에 들어가서 살고, 처가의 재산과 제사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물려받은 집이 지금까지 충무공 종가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현충사 경내에 있는 충무공 옛집이 그것인데, 지금도 그 집 뒤 편에 충무공의 장인과 장모의 묘가 함께 있으며 덕수이씨 충무공파에 의해 제사가 모셔지고 있다.
조선 후기에 오면 무남독녀일 경우 가까운 친족 중에서 아들을 양자로 들여 그로 하여금 집안을 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사위에게 재산과 제사를 상속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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