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情다운 故國山川을 離別하고 勞動市場인 当大阪에셔 各其 散在하야 품파리를 하고 그날그날의 生命을 維持하게 되엿습니다. 우리의 李忠武公 墓所 問題에 對한 誠金이 貴紙에 連日 記載됨을 볼 ᄯᅢ에 感慨無量하엿슴니다마는 우리는 이러한 苦境에셔 헤메이는 우리로서의 무슨 餘裕가 잇겟슴닛가 그럼으로 업는 힘을 合하야 勞賃의 一部을 드려 ᄯᅳᆺ을 表하야 墓所 保存에 萬一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람나이다
昭和六年 六月 十八日
發起 兼 集金人 金升洙
東亞日報社 編輯局 貴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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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정다운 고국 산천과 이별하고 노동시장인 이 오사카에서 각기 산재해서 품팔이를 하고 그날그날의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이충무공 묘소 문제에 대한 성금이 귀지에 연일 기재되는 것을 볼 때에 감개무량했습니다만은 우리는 이러케 고생하며 헤매는데 무슨 여유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없는 힘을 합해서 노임의 일부를 드려 뜻을 표현하니 묘소 보존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1931년 6월 18일
발기 겸 집금인 김승수
동아일보사 편집국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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