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시실

충무공 증시교지(忠武公 贈諡敎旨)

충무공 증시교지
보물 제1564-12호
  • 1643년 (인조 21)
  • 104.5 × 73.5

    이순신이 전사한 지 45년만인 1643년에 이순신의 생전의 공덕을 가리기 위하여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내린 교지이다.
    시호(諡號)는 정2품 이상의 문무관과 공신 또는 덕이 높은 선비의 사후에 내린 호이다.

선조 이후 역대 임금들은 이순신의 사적(事蹟)을 보고 흠모해 마지않는 이가 없었다.
1643년(인조 21) 인조는 이순신에게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때는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 삼전도에서 인조가 항복한 직후였다.
일본 왜적으로부터 온 국토를 유린당한 지 불과 40여 년 만에 이번에는 북방 여진족에게 무릎을 꿇었으니 그 옛날 목숨을 던져 임금의 치욕을 막은 이순신의 공적이 새삼 소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조를 이어 효종은 이순신의 마지막 전쟁터였던 경상도 남해에 ‘충무공이순신비‘를 세우게 하였고, 현종은 남해와 통영에 있는 이순신의 사당에 충렬사(忠烈祠)라는 편액을 내렸다.
현종은 또 유성으로 온천을 가던 길에 아산에 있는 이순신의 묘소에 들러 제사를 지내게 하고 제문을 내리기도 하였다.
숙종은 1707년(숙종 33) 충청도 아산의 유생들이 건의하여 지은 이순신의 사당에 ‘현충(顯忠)‘이라 이름 짓고 현판을 내렸다.

그리고 제문을 지어 내렸는데 이 글에서 숙종은 “절개를 지키려 죽음을 무릅썼다는 말은 예부터 있었으나, 제 몸 죽여 나라를 살린 것은 이 분에게서 처음 본다(殺身殉節 古有此言 身亡國活 始見斯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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