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시실

징비록(懲毖錄)

장비록
  •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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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전란을 극복하는 데 앞장섰던 서애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이 전쟁을 돌아보며 반성과 후일의 경계를 위해 기록한 글이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인물들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나라에서는 공신에게 공신녹권과 함께 그 초상을 그려 모시게끔 하였다.

이순신도 사후에 공신으로 책봉되어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도록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다.
그러나 공신에 책봉된 해가 이순신이 전사한 지 6년이 된 때였기 때문에, 당시에 그려졌다고 해도 생시의 모습을 직접 보고 그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그림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순신의 실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이순신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기록도 현재까지 몇 편 전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징비록』에서 서애 류성룡이 남긴 글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시 내각의 수장으로 전란을 극복한 류성룡은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 잘 아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류성룡은 여기에서 이순신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순신의 사람됨은 말과 웃음이 적고, 얼굴은 단아하여 마치 수양하며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다. 그러나 그 가슴 속엔 담력이 있어 몸을 잊고 나라를 위해 죽었으니 이는 평소 수양을 쌓아온 때문이다.”

이 기록은 이순신의 외양을 묘사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의 인품을 나타낸 것이리라.
그러나 수양을 통해 닦은 인품은 외양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니 이순신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적을 향해 불벼락을 내리는 맹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단아한 모습의 선비와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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