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시실

승자총통(勝字銃筒)

승자총통
  • 조선 후기
  • 길이 57.0 / 안지름 3.6
  •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개인 화기이다. 경상병사 김지(金遲)가 개발하여 여진족 니탕개의 난(1583년)을 토벌할 때 큰 역할을 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조선군의 주요한 무기가 되었다.
    심지에 직접 불을 붙여서 쏘는 방식으로 조총에 비해 사격 속도가 느리고 정확성이 떨어졌다.

승자총통은 위의 천지현황자총통과 달리 휴대용 개인 화기이다.
화약을 1냥 쓰고, 철환 15개를 발사하며 사거리는 600보에 이른다.
철환을 발사할 때는 화약과 철환 사이에 토격을 넣는다. 피령목전을 발사하기도 한다.
승자총통이 처음 문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은 1583년(선조 16) 니탕개의 난 때이다.
이때 온성부사 신립이 총통과 철환을 비 쏟아지듯 퍼부어 오랑캐를 퇴주시켜 그 공으로 임란 때까지 일국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런데 이 난을 평정하는 데 크게 힘입은 것이 바로 경상병사 김지가 만든 승자총통이었다.
김지는 전라좌수사와 경상병사를 역임한 무장인데, 그의 자세한 행적과 승자총통을 창제하게 된 경과 등은 알 수가 없다.

승자총통은 니탕개의 난 때 이미 그 북쪽 변경에 상당수가 보급되어 실제 전투에서 큰 효과를 보았다.
이후 이순신의 장계와 일기에서도 해전에서 사용하였음을 보여, 남방의 수군진영에도 널리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승자(勝字)나 쌍혈(雙穴) 등의 총통은 총신이 짧고 총구멍이 얕아 그 맹렬한 힘이 왜의 총통만 같지 못하며 그 소리도 웅장하지 못하다”는 이순신의 장계 내용처럼 그 성능과 구조가 일본의 신예 무기인 조총에 미치지 못하여 광해군 때까지 사용되고 사라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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