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시실

황자총통(黃字銃筒)

황자총통
  • 1812년 (순조 12년)
  • 길이 88.5 / 안지름 12.5
  • 네 번째로 큰 총통으로 가죽날개를 단 큰 화살을 쏠 경우 사거리가 1100보에 이른다.
    약통 뒤에 나무 막대기를 넣을 수 있는 손잡이와 포귀[砲耳]가 있어 조준사격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천지현황자 총통 가운데 가장 작은 것으로 화약은 3냥을 쓰며, 가죽 날개를 단 피령차중전(皮翎次中箭)을 쏠 경우 사거리는 1100보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황자총통에는 ‘萬曆丁亥四月黃字重三十一斤八兩匠富貴’라는 명문이 있어 제작연대(1587년, 선조20)를 알 수 있다.
이해 2월에 왜구가 전라도 흥양에 침범하여 녹도권관 이대원이 전사하고, 손죽도 등이 약탈당하는 피해를 입은 이른바 정해왜변이 일어났다.
같은 해 3월 선조는 병조에 일러 남방의 왜적을 방어할 무기가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살피라는 전교를 내렸다.
이 화포는 이렇게 왜구의 침범으로 군기의 보수와 제조를 서둘러야 하는 급박한 정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이 총통은 명문에 황자총통이라고 새겨져 있지만, 생김으로는 별황자총통과 같다.
별황자총통은 황자총통을 개량한 것인데, 황자총통보다 조금 더 크다.
그런데 『융원필비』에는 이와 똑같이 생긴 것이 황자총통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가서는 성능이 개선된 별황자총통으로 수렴된 듯하다.

별황자총통은 다른 천지현황자 총통들과 달리 총포의 밑바닥, 즉 약통 뒤에 나무 막대기를 넣을 수 있는 손잡이[모병(冒柄)]가 있고, 총통의 가운데 부분에 포귀[砲耳]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포귀를 받침대 위에 고정시키고 손잡이를 이용해 상하좌우로 쉽게 조정하며 조준 사격할 수 있게 한 것인데, 천지현자총통에 비해 크기가 작아 가능한 듯하다.
이처럼 손잡이와 포귀가 있는 것은 1615년(광해군 6)에 편찬된 『화기도감의궤』도설에 나오는 6가지 무기 가운데 불랑기와 백자(百字)총통에서 볼 수 있다.
‘嘉慶十七年壬申三月 日 訓練都監 苧洞’ 등의 명문이 있어 1812년(순조 12)에 저동에 있는 훈련도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포식언해』에 따르면 화약 4냥을 쓰고, 철환 40개나 가죽날개를 단 피령목전(皮翎木箭)을 발사하며, 사거리는 1000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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