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시실

천자총통(天字銃筒)

천자총통
  • 조선 후기
  • 길이 136.5 / 안지름 12.
  • 국립중앙박물관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화포 중 가장 큰 것이다.
    약통 부위에 己酉造上天字重七百斤 藥入三十兩(기유조상천자중칠백근 약입삼십량) 이라는 명문이 있다. 무게가 7백근(약 420kg)이며 화약을 30냥 넣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지현황 등의 문자가 붙은 총통은 부리의 입지름이나 무게 등의 크기에 따라 천자문의 순서대로 차례로 붙여진 명칭이며, 겉모습은 모두 비슷하다.
천자총통은 임진왜란 당시 사용하던 화포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사용하는 화약은 30냥이다.
발사물은 대장군전(『화포식언해』)이나 중연자(中鉛子-납탄환) 100개(『신기비결』)를 쓰며, 사거리는 대장군전을 쏠 경우 900보에 이른다고 한다.
무게는 『화포식언해』에는 56근 3냥이라고 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두 점의 천자총통은 각각 493근 10냥(嘉靖乙卯銘), 700근(己酉銘)이다.
실제 무게는 각각 296kg, 420kg이다. 현재 2점이 전해오는데, 하나는 1555년(명종 10) 10월에 주조된 것으로 육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총통 몸체 위편에 嘉靖乙卯十月 天 四百九十三斤十兩 端匠梁內子同 이라고 써 있어 제작연대(가정을묘년, 1555년)와 종류(天, 천자총통), 무게(493근 10냥) 그리고 제작자(匠, 양내자동)를 알 수 있다.
원래 두 개의 들쇠(擧金)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을묘왜변을 겪고 나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당시의 화포로 보이며 임진왜란 당시 실제로 쓰였던 종류의 것이라 볼 수 있다.
보통 가정을묘명(嘉靖乙卯銘) 천자총통이라 부르며, 보물 647호이다.
다른 하나는 충무공이순신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기유명(己酉銘) 천자총통이다.
이 총통에는 ‘己酉造上 天字 重七百斤 藥入三十兩 望月上’이라는 명문이 약통 부위에 새겨져 있다.
여기서 기유(己酉)년이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그 외형이 1813년에 편찬된 무기해설서 『융원필비(戎垣必備)』에 나와 있는 천자총통 도설과 거의 흡사한 점에서 미루어 짐작컨대 임진왜란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총통은 명종 연간에 만들어진 것과 약통 부분에서 형태상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이것은 지자, 현자, 황자총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즉 명종 연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총통들은 외관상 몸체와 약통이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바닥 쪽에 죽절이 두 개가 맞붙어 있는 것으로 거기까지가 약통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총통들은 『융원필비』 도설에 보이는 것과 같이 외관상 약통과 몸체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을묘왜변을 겪으면서 명종 연간에 대량으로 주조된 화포가 대형화한 바 있는 것처럼, 선조 연간에 또다시 북쪽의 여진(선조 16년, 니탕개의 난)과 남쪽의 왜구(선조 20년, 정해왜변)가 다시 소란을 피울 때 화포의 성능을 개량하고, 게다가 명과 일본 그리고 불랑기 같은 서양의 화포까지 전래되는 과정에서 변화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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