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시실

임진장초(壬辰狀草)

임진장초
국보 제76호
  • 조선
  • 46.0 × 33.53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조정에 장계(狀啓)한 글들을 다른 사람이 따로 옮겨 적은 것을 모은 책이다. 전쟁 당시 해전의 경과, 조선 수군과 일본군의 정세 등을 자세시 알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이다.

조선시대에는 관청에서 조정에 장계를 올릴 때 그 내용을 따로 베껴 써서 보관하도록 하였는데, 이를 『계본등록(啓本謄錄)』이라 한다.
『임진장초』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 주요 전투의 출전 경과 및 전과에 대해 보고한 것을 비롯하여 일본군의 정세, 군사상의 건의, 수군 진영의 현황 등에 대해 조정에 장계한 내용을 『계본등록』의 예에 따라 다른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다.이순신의 친필은 아니지만 임진왜란과 충무공을 연구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사료적 가치가 높으며, 현재 『난중일기 초고』와 함께 국보 76호로 지정되어 현충사에 보존되어 있다.
표지 왼쪽에 壬辰狀草(임진장초)라는 제목이, 오른쪽 위에는 萬曆二十年(만력20년)이라는 연도가 쓰여 있으며, 지면에는 全羅左道水軍節度使印(전라좌도수군절도사인)이라는 네모난 주인(朱印)이 찍혀 있다.

초본의 글씨는 해서(楷書)로 반듯하게 쓰여 있으며, 책장은 모두 81장이다.
내용은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으로부터 150여 척의 왜선이 부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관문(關文)을 받고 자신도 군사와 병선을 정비하고 사변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고하는 1592년 4월 15일자 계본(啓本)을 시작으로, 동궁(세자 광해군)으로부터 적을 무찌르라는 명령을 담은 서장을 받았다고 아뢰는 1594년 1월 15일자 장달(狀達)까지 3년치 61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임진장초』외에 1594년 2월 15일의 계본을 필두로 하여 같은 해 4월 20일의 계본으로 끝맺고 있는 12편의 초본이 또 다른 한 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둘을 합치면 이순신이 올린 장계의 초본은 모두 73편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정조 때 이순신의 문헌자료를 집대성한 『이충무공전서』에도 장계 71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같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 있는 반면 어느 한쪽에만 실려 있는 것도 있다.
이를 서로 대조해 보면, 전서에 수록된 71편과 초본에만 있는 7편을 합하여 현재까지 전해 오는 충무공의 장계는 모두 78편이 확인된다.

『임진장초』를 『이충무공전서』의 수록 내용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1.『전서』의 내용이 순전히 한문으로만 수록되어 있는 데 반해, 『초본』에는 실제 장계를 올릴 때 쓰던 법식대로 이두(吏讀)로 토가 달려 있다.

2.『전서』에는 전혀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음에 반해, 『초본』에는 매 편마다 조정에 장계를 올릴 그 당시의 날짜와 어떤 경우는 시간까지도 명기되어 있다.

3. 인명과 지명 등에서 『전서』의 내용이 『초본』과는 달리 수록된 것이 있을 뿐 아니라 『전서』에는 초본의 내용을 간혹 줄여서 수정한 곳도 있다.

『임진장초』는 『난중일기』에서 간략하게 적어둔 여려 해전에 대해 출전 경과에서부터 참전 함선, 일본군의 상황, 전투 경과 및 성과, 각 장수의 군공 그리고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까지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꼼꼼히 기록하고 있어 임진왜란 해전사를 연구하는 데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료가 된다.
또 수군 징발 정책, 둔전 설치, 지체하는 장수에 대한 처벌, 전쟁물자 조달, 진중에서 과거를 개장하는 일 등에 대한 각종 건의와 일본군의 정세, 수군의 현황 등을 담은 각종 보고도 수록되어 있어 그 중요성을 더해준다.

해전의 승첩을 아뢰는 어느 계본의 예를 통해 그 수록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신 이, 삼가 적을 쳐서 무찌른 일로 아룁니다로 시작하는 이날의 계본은 이 글을 쓸 당시의 정세에 대해 먼저 서술하고 있다.
보통 조정에서 내린 지시 문서나 관찰사 또는 인접 수사로부터 받은 공문을 언급하는 등 그동안의 경과를 상세히 보고하며 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 다음으로는 출전하는 아군의 군선을 적고 이어 날짜별로 출전하는 경로를 출발지와 경유지, 밤을 지내게 된 포구까지 상세히 적는다.

이 과정에서 적을 발견하게 된 경위, 적이 머물러 있는 곳의 지명과 지세, 군선과 병력 수 등을 적고, 이어 어떤 작전으로 전투를 벌였는지를 적고, 그 전투에서 각 장수와 병사들이 올린 전과를 당파분멸한 함선의 척수, 목을 벤 숫자, 노획하게 된 전리품, 사로잡은 왜군, 그리고 포로로 잡혀 있던 백성을 구출하여 그 백성으로부터 적의 정세를 탐문한 내용까지를 낱낱이 기록한다.
이런 식으로 며칠에 걸쳐 각각의 해전을 다 기록한 다음 해전을 마치고 본영으로 돌아오게 된 사유와 경로를 알려준다.

마지막 부분은 전상자와 군공자에 대한 조치와 포상계획 등에 대해 언급한다.
먼저 전사자와 부상자 명단을 적는데 여기에는 소속과 병종, 이름순대로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다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화살에 맞아서 죽었는지(혹은 다쳤는지) 철환에 맞아서 그렇게 된 것인지를 분류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위의 사람들은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결사적으로 돌진하다가 혹은 죽고 혹은 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의 시체는 각기 그 장수에게 명하여 따로 작은 배에 실어서 고향으로 보내어 장사지내게 하고 중상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은 약물을 지급하여 충분히 치료하도록 하라고 각별히 엄하게 신칙하였습니다.고 조치 내용을 보고한 후, 아울러 ‘그들의 처자들은 휼전에 따라 시행하도록 조치하여 줄 것을 건의한다.

‘ 그리고 각 장수들의 군공을 참작하여 포상하여 줄 것을 건의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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